시인 구상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 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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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구상의 시를 읽으며 연암 박지원의 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세태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은 박지원의 「민옹전」은 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과 상징적 비유가 가깝게 읽혔다. 이 기회에 박지원 옆에 구상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두 사람의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해 서재에서 사이좋게 머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원과 먼 거리에 놓여 있던 구상의 책을 민옹전 옆으로 옮기고 나니 훨씬 안정감이 느껴지는 방 안.
한 손님이 민옹에게 ‘두려운 것을 보았냐.’고 물었다. 민옹은 ‘두려운 것은 자신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이어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짐승 같은 야만인이 되고 만다.’는 민옹의 말을 통해 그동안 완곡법과 웃음 뒤에 감춰왔던 내 욕망이 송곳처럼 만져지는 듯 했다.
욕망은 봄비에 쑥쑥 자라는 죽순 같아 키우기는 쉬워도 억제하는 일은 어렵다.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과유불급이 되는 세상. 욕망은 눈 뭉치를 굴리는 것과 같아 눈이 녹으면 그 속에 빠져 익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민옹은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제 자신이 잡아먹힐 것’라며 욕심을 무비판적으로 키워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과 박지원의 두려움에 관한 물음은 우리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사납고 거친 욕망의 크기를 재단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타심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욕망의 크기와 사나운 모습은 어떤 형상일까.
붓 끝을 모아 문체반정에 힘썼던 박지원과 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을 통해 우리도 마음을 비추는 거울 하나씩 가져볼 일이다.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욕망의 자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이런 자아를 만나다면, 훗날 나를 해하지 않도록 잘 다독여 볼 일이다. 봄이 오기 전 햇살 시린 겨울 하늘에 마음을 맑게 씻어볼 일이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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