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은화
홍씨와 탁씨
웜메, 고약헝거. 자네 밥 냅두고 왜 넘으 밥을 묵는 당가.
워따, 참말로 생사람 잡아불구만, 나는 내 밥 묵었단 말시.
참 내! 눈구녕 뒀다 어따 쓸라고, 넘으 밥을 묵고 난리여.
자네야 말로 눈구녕 빼서 개한테나 줘불소.
먼 소리여! 나가 개눈깔 박아불었는가 안 눈두덩 만지믄 수북한 것이 영판 좋당께.
염병! 오죽 좋겄네. 그나저나 밥알 튕게 말 좀 살살 하소. 오늘따라 이놈의 밥알은 별시럽게 끈끈하고 지랄이여.
어이, 탁 씨. 그라지 말고 사람 불렀으믄 쌈 한 번 싸줘 보소. 지 입에다간 허천나게 쑤셔넣문서.
병신, 자넨 손이 없당가 발이 없당가. 싸게 입 벌리게.
워따! 안 주고 뭐한당가. 맘보가 그 모냥잉게 눈꼬락서니가 그라제. 말 인심만 살아갔고잉.
사람, 승질머리 급하긴. 더듬는 것이 다 구멍이고 허방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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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시 평론) “손님이 올 때를 빼믄 밤에도 불 켤 일이 없어라.”
남자가 깜박 잊었다는 듯 일어나 안방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TV 위로 비스듬히 걸려있는 가족사진, 나는 사진을 본 순간 몸에 전율이 일었다. 단정한 백발의 커트 머리를 한 노모 뒤로 한복 입은 부부가 눈을 부릅뜬 채 서 있는.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부부의 웃는 모습이 박꽃처럼 순했다.
부부는 오늘 초대한 친구를 구 년 만에 만난다고 했다. 남자가 친구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망둥이처럼 살아 파닥거리는 사투리가 싱싱하게 들렸다. 그때마다 눈동자를 굴리는 남자의 눈빛이 어둠을 털며 가벼워지곤 했다. 잠시 후 열린 현관 앞 반가운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급히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따! 참말로 홍 씨 자네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부렀네이.”
“자네는 제수씨가 겁나 잘해 준갑네. 얼굴이 훤해져 부렀어.”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더듬었다. 살이 쪘느니 빠졌느니 손으로 얼굴과 몸을 만지는 두 사람 눈에 눈물이 비쳤다.
“아따! 거기는 내 거시기란 말이시.”
남자가 엉덩이를 뒤로 빼며 맹인 친구의 손을 움켜줬다. 순간 폭죽 같은 웃음소리에 놀란 옆집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남자와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바쁘게 점심상을 차렸다. 맹인 친구가 나에 관해서 묻자, 남자는 집안일을 도와주러 온 고마운 분이라고 소개했다. 세 사람은 그릇에 담긴 반찬들을 손으로 확인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손에 묻은 양념들이 그릇마다 묻거나 젓가락으로 집은 반찬들이 섞이며 밥상은 금세 지저분해졌다. 밥알 튀도록 밀린 대화를 나누며 먹는 밥상의 분위기는 흥겨웠다.
“오메! 홍 씨는 자네 밥 냅두고, 왜 놈의 밥을 묵고 그란 당가?”
그릇 속에 손을 넣고 가만가만 더듬던 남자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뭔 소리, 생사람 잡네. 나는 내 밥 먹었단 말여.”
홍 씨가 남자보다 더 소리를 높였다.
“눈구녕은 뒀다, 어따 쓸라고 남의 밥을 묵고 난리여?”
“아따! 내가 안 개눈깔 박은 거 모른가, 만지면 수북한 것이 겁나 좋당게.”
말을 주고받을 때마다 목소리는 한 옥타브씩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조심스럽게 탁 씨의 밥은 여자가 먹은 것이라고 말했다. 밥상은 단박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말싸움하며 이들은 그동안 만나지 못한 아쉬움 달랬다. 이처럼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반복된 뒤 점심 식사가 끝났다. 삶의 불편한 이야기를 농담으로 받아치는 그들의 재치에 해학이 묻어났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해가 기울었다. 몇 년 전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남자의 말에 홍 씨는 손을 더듬어 남자의 무릎을 토닥였다. 나는 정작 본인들은 볼 수 없는 가족사진을 벽에 걸어둔 부부의 사진을 올려다봤다. 쓸쓸한 침묵 속 우리들의 눈가는 붉어졌다.
「홍 씨와 탁 씨」의 감상 글은 표현적(表現論) 관점에서 썼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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