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없다(소나타)
파블로 네루다 (1904-1973)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워진 땅이라든가
살아 흐르느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 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밖에 없다.
(중략)
배들이 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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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밖에 없다,’고 답한다. 이어 이 망가짐의 내력을 구체적인 기억들로 들려주는 화자. ‘어두워진 땅’과 ‘울고 있는 내 누이’ 그리고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라는 내용을 비추어볼 때, 화자가 망각에 저항하는 행위는 체제의 억압과도 맞닿아 있다. 이 폭력이 사회와 개인의 삶에 미치는 비극을 윤리적 시선으로 귀결하는 시. 개인의 기본적인 바람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이다. 그러나 지금도 가족과 개인의 삶이 위협받는 일은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다고 말하는 그의 상처는 현재 우리가 겪는 상처의 동질성과도 겹쳐 있다. 이는 공익을 가장한 사익의 정치성 그늘에서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보고서와 같은 것. 이와 같이 윤리적 환기를 요구하는 검은 밤의 내력들은 시가 되고 울림이 된다.
「망각은 없다(소나타)」 이 시는 역사적 아픔을 안고 간 이들이 머무는 기억의 집이다. 전쟁과 기아와 차별로 지금도 고통받는 이들과 상처를 포개 놓기에 충분한 집. 시대적 정의를 요청하는 이 소나타는 지구상의 노래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지 않을까.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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