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한명숙
오래된 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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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그동안 우리는 가난을 주제로 하는 서사들을 많이 접해 왔다. 힘들지만 따뜻한 시, 오늘 만나는 한명숙 시인의 『오래된 통장』은 삶의 애환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시이다. 이 『오래된 통장』에는 돈의 여정과 상실, 희망이 한 줄 한 줄 찍혀있다. 일기의 날짜를 적듯 찍힌 입출금 날짜와 그 시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통장.
통장을 펼치면 ‘아무리 따뜻하게 가계부를 써도 마이너스 기온은 올라가지 않았다’고 회고하는 시인은 ‘눈물이 헤픈 것보다 웃음이 헤픈 쪽을 택했다’고 말한다. 이어 ‘잔고가 없더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희망이라는 통장이 우리에겐 있었다’ 는 내용에서 돈의 욕망을 초월하고자 하는 긍정적 힘을 읽을 수 있다.
화폐의 흐름은 물물교환의 형태로 시작해 지금은 중앙 화폐가 디지털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처럼 화폐의 역사는 오랜 세월 인간의 생성과 소멸 속에서도 살아남아 가치를 형성하며 국가와 국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의 교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화폐에 대한 통시적 관점과 공시적 시점을 직시해 우리는 돈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 것인지 우려해 볼 일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던 시절이 오래된 통장 속에 저축되어 있다’며 가난을 수용하는 시인은 통장의 입출금 흐름을 통해 돈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던 시절’이라는 문장에서 마음 먹먹해지는 시, 숱한 답청에도 파릇파릇 자라는 보리처럼 ‘헤픈 웃음’ 키우던, 시인의 희망이 담긴 시. 내면의 강한 의지가 녹음綠陰처럼 짙다.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은 통장, 한 장 한 장 넘기는 소리가 머무는 곳. 그곳에 시인의 배추꽃 웃음 소란스럽기를 바란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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