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㊴] 취하라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6-19 14: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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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라

샤를 보들레르(1821–1867)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해라.
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이든 그대 마음대로.”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취하라! 이 표현은 유희적 권유가 아니다. 존재의 진지함이다. 항상 취하라,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짓눌린 현실의 무게를 잊을 수 있다면 무엇도 괜찮다고 말한다. 도피가 아닌 몰입의 방식을 빌려 삶의 무게를 견디기를 권하는 보들레르. 우리, 자신이 원하는 일에 취해 본 적 있는가. 있다면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현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라는 해방적 욕구가 담긴 글.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이 명령은 번개처럼 독자의 시간을 일깨운다. 무엇에 취할 것인가의 질문이 아닌 끊임없이 취해있는 상태 자체를 의미하는. 그러나 현대인은 하나에 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시간을 확인하는 생활 속,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일상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이런 우리에게 무언가에 취하지 않고서는 시간의 권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역설하는, 작가의 도발적 외침이 담긴 글. 하루하루 그저 시간의 흐름에 쓸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몰입은 시간의 경계에서 벗어나 자신마저도 지워지는 시간을 취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일종의 실존적 명령문과 같은 ‘취하라’ 곧 항상 깨어 있으라는 제시는 마치 안개 속 미로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받는 기분이다. 이어 취기가 풀릴 때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묻기를 권하는 그의 답은 사물과 자연까지 열려있다. 고통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양가적 속성을 담은 글. 취하라! 그의 외침처럼 우리는 한 번이라도 무아지경에 취해 본 적 있는가.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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