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⑥] 욕記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2-24 1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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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記
시인 정일근

욕記

 

정일근

전라도 종마 같은 이대흠 시인이
내 홈페이지 방명록에 '씨벌'이라고 적었다

씨벌은 욕이다, 며
홈페이지 독자들은 씨벌씨벌 다시 욕 올린다

이대흠의 씨벌은 욕이 아니다
그의 시며 사람의 향기다, 나에게 주는
서해 갯벌 같이 질퍽한 사랑이다

​입 속 가득 구린내 나는 욕 감추고
음전한 척, 척 하는 세상을 향해
나도 씨벌 씨벌 씨벌 욕 먹이고 싶다

욕이 욕밖에 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욕도 시가 될 수 있다 가르치며
이 씨벌! 뒤통수치며 욕 퍼붓고 싶다

​시인이 시인에게 하는 욕은/ 욕이 아니라 사랑이니

대흠이 이 씨벌! 내 입안 가득/ 청량한 용뇌향 고인다

*이대흠은 씨벌이 씨앗들의 벌판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자궁, 들판, 갯벌이 모두 씨벌이다.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시 평론) 손주들에게 화가 날 때면 “복 받을 놈아! 어서 일어나지 않고 뭐 하냐. 복돼지야! 이 할미를 무시하는 게냐. 화가 나서 살겠네.” 이렇듯 긍정적인 표현으로 욕을 대신하는 어머니. 반어를 써가며 미움을 내려놓으시곤 했다. “저 금송아지 닮은 놈, 성공할 사람 같으니라고!” 목청을 높이는데 그때마다 나는 어릴 적 나를 혼내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반가웠다. 정일근 시인의 「욕/記」을 읽으며 어머니의 욕이 그리워지는 시간, ‘씨벌’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뱉는 탓에 시를 읽는 재미가 컸다.


「욕/記」은 ‘이대흠 시인이/ 홈페이지 방명록’에 ‘씨벌’이라는 욕을 적어놓고 나갔다는 폭로로 시작된다. 그러나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대흠의 씨벌은 욕이 아니다/ 그의 시며 사람의 향기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이어 나를 향한 ‘질퍽한 사랑이다’고 하는 결말에서 시인의 마음 그릇의 크기가 그려졌다.

정일근 시인의 또 다른 시 「어머니의 그륵」에는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는 문장이 있다. 사회에서 바른말, 고운 말을 익힌 우리와 달리 스스로의 삶에서 터득한 발음 ‘그륵’, 어머니의 투박한 언어 안에서 자란 시인의 시 힘은 곧 사랑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는 「욕/記」을 다루는 정일근 시인의 큰마음에서 어머니의 투박한 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욕도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은 이대흠 시인의 ‘씨벌!’이 시인의 입 안에 ‘용뇌향’으로 고인다고 끝을 맺는다. 용뇌향은 양귀비가 입욕제로 사용한 향이다. ‘용뇌’란 귀하다는 의미로 용‘龍’자를 붙였다. 얼음과 같다고 하여 빙편으로 불리던 ‘용뇌향’을 ‘내 입에 고인다’고 한 시인의 인식은 욕도 곧 시가 되고 애정의 표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맛깔스러운 시를 읽다 며칠 전 받은 문자를 본다. ‘은지수능합격소망’라는 글이 폰 화면에 뜬다. 조만간 인사를 오겠다는 글과 함께 보내온 여행에서 찍은 학생 사진이 반갑다. 연락처에 적힌 예원성적감사, 엄마건강감사, 언니행복감사, 각각의 소망을 담아 편집한 이름들을 읽는다. 벨이 울리면 화면에 뜨는 이름들, 소중한 이들의 바람을 떠올리는 3초의 시간들! 이대흠 시인의 ‘씨벌!’을 넉넉하게 품어 준 시인의 「욕/記」을 통해, 어머니의 ‘아름다운 욕’을 회상해 본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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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와일드님 2025-02-24 18:32:27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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