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㉜] 무릎을 잊어버리다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5-26 16: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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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잊어버리다

엄원태


한동안 무릎은 시큰거리고 아파서, 내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아침산책 몇 달 만에 아프지 않게 되​자 쉽게 잊혀졌다.

어머니는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시다. 때로는 잘 삐치시고 짜증까지 내신다. 어머니 ​보시기에, 우리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삼시 세​끼를 꼭 챙겨드려야 마지못한 듯 드신다. 어쩌다 외출이 길어져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그때까지 밥을 굶으시며 아주 시위를 하신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아픈 무릎​이다.

​아우는 마흔 넘도록 홀로 대척지인 아르헨티나로 멕시​코로 떠돌아다닌다. 아우에 대한 어머니의 염려와 사랑​은 참 각별하시다. 아우는 어머니의 아픈 무릎이다.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무릎’은 관심이자 아픔이며 사랑이다. 일상의 사실적 기록을 시로 옮긴 시인은 자신의 무릎에 관한 이야기로 서사를 시작한다. 이어 2연은 어머니의 이야기로 전환되는데 먼저 ‘어머니는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시다.’라는 행을 통해 어머니와의 불편한 동거를 유추할 수 있다. ‘어쩌다 외출이 길어져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그때까지 밥을 굶으시며 아주 시위를 하신다.’는 어머니를 두고 화자는 이런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아픈 무릎​이다.’라고 토로한다.

98세에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 역시 화자의 어머니를 닮았다. 정성껏 세 끼 식사를 챙겨도 어머니는 매년 제철에 맞는 계절 밥상을 원하셨다. 그뿐이겠는가, 부부가 외출에서 돌아오기까지 차려놓은 밥을 드시기는커녕 현관문을 살짝 열고 앉아 기다리시는 일이 빈번했다. 부부가 여행을 가려면 늘 모시고 다니던 어머니. 안에서는 당당하고 바깥을 향해서는 환하게 웃던. 이런 어머니에게도 아픈 무릎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육십을 넘긴 아들에게 쌈짓돈을 모두 내주시던. 형제들은 어머니의 무릎이 평생 효도 한번 하지 못했다고 서운해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외면한 채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를 노심초사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서운할 때도 있었으나 그 아들에게만 열린 어머니 마음을 어쩌겠는가.

가끔 장난삼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들 집에 가서 사시라고 하면 피식 웃으시며 옆으로 고개 돌리고 학처럼 앉아 먼 곳을 보시던. 이런 어머니는 백발은 검은색을 띠고 검버섯은 옅어지며 예뻐지기 시작했다. 시력도 딸보다 좋고 치아도 모두 자기 이를 유지해서 백 세를 훌쩍 넘기실 줄 알았다. 어머니는 저녁밥을 드신 뒤 홍삼도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드셨다. 잠자리가 궁금해 방문을 여니 어두컴컴한 곳에 우둑하니 앉아계시던. “어머니 내일 강화에 가서 구경하고 달달한 커피도 사드릴 테니 어서 주무세요.”라며 자리에 눕혀드리자 “나 갈란갑다.” 형부 얼굴을 애틋하게 만지던 어머니는 자기 죽음을 예견하신 듯 그날 밤 숨을 거두셨다. 정작 본인의 죽음 앞에서는 고맙다는 말과 덕담을 건네시고 가셨다.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깨끗한 죽음, 건강한 죽음을 맞으셨다고 말한다. 아들을 위해서는 본인 입에 들어갈 음식도 아끼며 기다리시던, 지금은 그런 어머니가 그립다. ‘아우는 어머니의 아픈 무릎이다.’라는 화자의 어머니, 하지만 그 무릎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의 통증을 앓고 계시지 않았을까. 자식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후회 속에 묻는다고 했다. 혈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 눈시울 뜨겁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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