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㊲] 흥부 부부상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6-12 17: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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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 부부상

박재삼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이 문제리,
황금 벼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 면(面)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
그러다 금시
절로 면(面)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살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本)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에 사는 예비 신부에게, 예비 신랑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느냐고 기자가 묻는다. “저 사람이 나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주고 과일을 따 주겠다고 했어요.”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답하던 그녀의 얼굴 떠오른다. 잠재적 수몰 현상에 놓인 바누아투,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그 작은 섬나라, 오래전 영상에서 봤던 그들은 부부의 연을 이어가며 잘 살고 있을까.

얼마 전 제자가 청첩장을 보내왔다. 축하한다고 전화를 걸자 꽃망울 터지는 웃음에서 라일락 향이 났다. 제자에게 예비 신랑의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다. ‘다 좋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듣는데 먼 섬나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예비 신부의 눈부신 웃음이 제자의 웃음과 겹쳤다. 여름의 신부여! 부디 지금 이 마음으로 살아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너의 이름이 보통 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라는 것을 기억하며. ‘손발 닳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 면(面)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며 살아간다면, 「흥부 부부상」처럼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가난이 마치 자신의 탓이라는 듯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시. 서로 어여삐 여기며 살아간다면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마음 풍족해질 것이다. 수십 년을 산 부부라도 신랑 신부라는 단어는 늘 마음 설레는 말,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구절인가. 흥얼댈수록 흥이 절로 나는 주술성 강한 부부의 경전과 같은 시. 제비의 아픔도 귀히 여기는 흥부의 마음처럼, 서로의 사소한 언행에도 마음 기울이며 살아간다면 훗날 ‘본 웃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흥부전』의 흥부는 노동이 아닌 착한 행위로 제비의 도움을 받아 흥하는 인물이다. 경제적 수완도 필요하지만, 이타적 관계성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하는 글. 「흥부 부부상」을 읽으며 여름이면 면사포를 쓸 제자의 수줍음을 상상한다. 라일락 웃음이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름이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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