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51] 호두학개론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9-15 13: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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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학개론

려 원


지구의 몸무게는 호두 한 알의 무게 같아

호두까기인형이 지구의 속알맹이를 다 까먹어버렸는지
모를 일이야

호두의 입장에서 몰입하다가
자전축의 생각을 쓸쓸하게 짚어보기로 해

당신이 사다준 호두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적도와 위도로 굴려보면

우리의 안쪽과 바깥의 온도차가
손안에 꽉 쥐어지지

그때 별자리를 이루는 궁합
엇갈린 애정운과 이별수가 자주
교차되고 있었지

이상한 침묵도 이상하게 서로 딱딱 소리를 냈었지

무심코 호두알을 손바닥에 굴리는 건
벗은 지구의 느낌

호두의 저지선을 무조건 깨트려보고 싶은 것뿐이야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이 시는 단단한 호두 한 알에서 우주의 별자리를 짚어냅니다. 지구본을 쓰다듬듯 손바닥 위 호두를 굴리면서요. 단단하지만 조금만 힘을 가해도 부서지는 호두는 우리 자신과 닮았습니다. 호두를 통해 중심의 감각을 되짚는 시인의 이 시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과도 비슷하지요.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어디쯤에서 무너졌고 또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행위처럼 말이에요. 이와 같이 날마다 회전하는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지만 그 중심축이 무엇인지 사유하는 일은 드뭅니다. 바쁜 일상에서 정작 어디에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지 쉽게 잊곤 하니까요.

아침 눈을 뜨면 의무처럼 해결할 어떤 일들이 기다리는 하루. 이런 삶이 최선일까, 자신에게 묻거나 허공에 대고 묻을 때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겉모습은 밝지만, 속마음은 무거운 순간들, 누구나 한 번쯤 “안쪽과 바깥의 온도차”를 느낀 적 있을 거예요. 이처럼 답답할 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요. 사람은 감당하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사건 앞에서 점성술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정운과 이별수” 조차도 우주의 무심한 배치일 뿐. 감정의 엇갈림 사이 자칫 우리의 중심이 깨지거나 어디론가 굴러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호두의 저시선”을 깨트리고 싶을 만큼 답답한 말들이 쌓여 입을 다물 때가 있지요. 하지만 이 침묵이 더 큰 소통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지구의 무게를 호두 한 알의 무게로 바꿔놓은 시인은 호두 한 알의 무게와 한 알의 여림, 이 단단하고 조용한 울림이 우리의 손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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